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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내 암유전자 검사의 실상

2002-05-28 조회수 281

'육아에 직접 활용할 만한 유전자 검사 6가지-유전자검사 육아법'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 웹진에 실린 특집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아이에게 지능, 비만, 신장, 체력 등등 6가지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개인의 타고난 소질, 능력, 건강 등을 미리 파악하여 보다 좋은 육아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권한다.



뒤이어 당신의 아이도 영재일 수 있다는 은근한 유혹과 함께 사설 검사기관의 연락처와 결코 싸지 않은 검사료가 친절하게 소개된다.



이렇게 전술한 출판사 이상으로 '유전자'라는 단어를 가장 잘 상품화하고 있는 곳이 이른바 '유전자 검사'를 주 사업아이템으로 표방하는 몇몇 바이오벤처 기업들이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대한 진단검사의학회(임상병리학회)에서는 영재감별용 유전자 검사 등과 같이 학문적 근거가 미약한 유전 소인 검사들을 영리기관인 바이오벤처에서 시행하는 것이 법적, 윤리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누차 지적해 왔고 작년에 공청회도 개최한 바가 있다.



공청회 석상에서 학회는 정부측에 유전자 검사에 대한 과장된 기대와 그릇된 믿음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동일한 맥락에서 소위 '암유전자 검사'라 불리는 것이 무엇이고 현시점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간략히 그 실상을 알아보기로 하자.



암유전자라 하면 연구자들은 먼저 oncogene으로 표기되며, 암억제유전자와 더불어 세포성장 및 신호전달에 관련된 일련의 유전자군을 떠올리게 되지만 통상 암유전자 검사라 말할 때는 이들을 포함하여 특성상 암의 조기 발견에 사용할 수 있는 진단용 유전자 검사와 장차 암에 걸릴 가능성을 미리 알 수 있게 해 주는 예측용 유전자 검사 모두를 지칭하게 된다.



어느 쪽이건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연구단계에 있는 유전자들의 이름이 상당수 '검사'의 반열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임상적 의의가 분명하며 재현성, 정확성 등 정도관리가 철저히 보장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검사'라는 말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나 연구기관의 명예욕과 투자유치를 위한 업적 부풀리기, 거기에 매스컴의 선정성이 보태져서 '획기적인', '최첨단의' 암유전자 검사가 우르르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 자못 우려스럽다.



이것은 마치 임상시험은 고사하고 독성시험도 안해본 신약을 단지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해서 환자들에게 마구 먹어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유전자 검사가 그러하지만 특히 암유전자 검사는 반드시 의료의 일부분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즉 검사전에 유전성 암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의료진으로부터 환자에게 전달이 되어야 하고 검사결과가 나온 뒤에는 거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 및 향후 방침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또 암유전자 검사 자체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상당한 전문지식이 요구된다. 여기에 바로 암유전자 검사와 관련된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즉 국내에 암 유전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유전학 전문의 제도와 더불어 철저한 교육을 받은 약 2000명의 유전 상담가(genetic counselor)들이 있어서 각종 유전성 암들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유전성 암의 종합적인 관리에 대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의 유전자 검사만 남발하는 것은 아무리 검사가 정확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고 하여도 환자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반쪽의 도움 밖에 받을 수가 없다.



끝으로 암유전자 검사와 관련하여 시급한 숙제 하나를 더 지적하자면 유전성 암에 관한 한국인의 데이터가 조속히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이 될 수 있는 암, 즉 가족성 혹은 유전성 암의 빈도는 전체 암의 약 5%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방암, 난소암, 대장암 등 유전성이 비교적 높다는 암도 어느 정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국의 통계를 기본으로 한다는 데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존의 유전자 검사들도 대부분 서양인에서 흔히 발견되는 돌연변이를 찾으려는 쪽으로 확립되어 있다.



실제로 어떤 암유전자 검사를 하다보면 우리가 지금 한국인에서 발견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거나 유전적 변이가 있어도 그게 실제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돌연변이를 찾아보겠다고 비싼 유전자 검사를 시간 들여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암유전자들 중에는 최근에 와서야 밝혀지고 있는 것들이 많지만 일부 암이 유전된다는 현상은 이미 과거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그런 가족을 접하는 임상 의사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따라서는 유전성 암에 대한 한국인 데이터가 훨씬 빨리 확보될 수도 있다. 이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암관련 연구자 및 의사들의 숙제이며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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